慧/核

방사능 피해자료들

I T69 U 2011. 4. 5. 11:05

출처 : 언더 그라운드 블로그



방사능 그리고 피해자료들

 

 

 

 

지금 포스팅하는 자료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던

 

방사능 피폭 피해에대한 사례와 관련 정보를  조금조금씩

 

약 3주간에 거쳐 모은 자료를 정리하여 포스팅하는 자료입니다.

 

출처가 워낙 다양하고 내용또한 조금 뒤죽박죽인 감이 없지않아 있기에

출처는 기억나는대로 중요한것위주로 명시하도록 하겠으며

그외의 출처들은 기억나는대로 후에 계속해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소개해드릴 자료는 1945년 일본의 원자폭탄 피해관련 자료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관련된 자료,

그리고 1999년 일본에서 일어난 토카이무라JCO임계 사고에대한 자료들입니다.

 

 

후에 더많은자료가 모이이거나 정보의 수정이 필요할시에 

게시물을 수정 해가면서 자료를 추가, 수정해나갈 예정입니다. 

 

 

자료의 내용이 좀 많이 길어질수도 있지만 나눠서 포스팅하지않고 한번에

다같이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이 게시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혹, 유혈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미성년자 혹은 심약자의 열람을 금지함.

 이 경고를 무시하고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열람자 본인에게 있음을 명백히 밝힌다.

 

 





 

 

 

현대전에서 그 존재만으로도 위협이되는 핵무기와 원자력들

 


첫번째로는 핵무기와 관련된 방사능 피폭의 이야기를 할까한다.

 

 

 

 

 

히로시마 그리고 나가사키

 






 

1945년 2차대전의 종전을 알리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폭발한 원폭의 피해자들

 

 

 

모두들 익숙하게 알고있는

현대 핵무기의 가장 무서운점이 

대표적으로 두가지가있다.

 

 

첫째로 폭발과 동시에 일정 피폭범위안의
모든것들이 흔적도없이 증발한다는점,

 


둘째로 핵무기가 끼치는 상상하기도 힘든 후발적 피해양상이

인류, 나아가서 전 지구적  환경에 위협이된다는 점이다.

 

..

..

 

방사능에 피폭되어 그 증상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에비하면
폭발과 동시에 열상으로 즉사하는사람은 차라리 행운인편이 라고도 할정도로
핵무기의 잠재적위험은 폭발력보다는 뒤에다가올 재앙에 존재한다고해도
지나친말은 아닐것이다.

 

 

방사능피폭은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체외피폭과 체내피록으로 구분된다.


체외피폭이란
원자폭탄이 작열한 순간에 나오는 방사선이나
의료에서 사용되는 X선 촬영처럼 체외의 방사선원으로부터
피폭되는 것으로 지금보시는 거의 대부분의 자료는 체외 피폭에의한 피해들이다.


체내피폭은 오염식품 따위의 방사선을 내는 물질을
체내에 섭취하여 발생하는 피폭이다.
이 체내피폭에 대해서는 토양으로부터 식물에의 이행과정이나
식물의 연쇄를 통하여 방사성 물질이 체내에서 농축되기 때문에
대단히 막대한 피폭을 몰고 올 위험성이 크다.

 

한꺼번에 고선량의 피폭을 당하게 되면 급성장애 및 급사를 맞게 된다.
어림잡아 0.1~0.25 Sv(시버트)에서 화상, 탈모, 구토감, 백혈구 감소 등의
급성장애가 발생하고, 3 Sv부터 급사가 나타나며,
6 Sv 정도에서는 전원이 급사한다.

 

 




 






폭발뒤 시간이 얼마간 지나서 찍힌 기록사진들 

주목할만한사진은 열상으로 인한 사망이 아닌
방사능 피폭자들의 사진이다.

피부의 재생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세포가 죽어서 벗겨진뒤에도
새로 피부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탓에
근육과 생살들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저선량의 피폭을 당한 경우에는 그 방사선량에 따라
일정한 확률의 백혈병, 암으로 인한 사망 등이 일어나며,
생식세포가 피폭되면 유전장애 등을 몰고 온다.


이러한 암이나 백혈병은 급성장애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피폭 후 수년 혹은 수십년이 경과한 뒤부터 발생하므로 후발성장애라고 한다.

 

더우기 유전장애의 경우에는 한 세대의 피폭 영향이 세대를 넘어
자손대에까지 신체적 장애로 나타나므로

다른 단순 재해나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성을 나타낸다.

 

 

그외에도 방사능 피폭이 두려운 이유는 한가지가 더 존재한다.

저선량이 아닌 강한 방사선을 맞는다고 해도, 세포는 대부분 거의 죽지 않는다.

 

다만 세포 분열에 필요한 DNA가 파괴되어 분열을 할 수 없게 되므로,
신체 조직의 재생이 불가능해지며 그래서 일정기간 후

(현재 존재하는 세포가 수명이 다해 죽었을 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피폭(방사능병 혹은 방사능증)은 전리복사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생체 조직이 피해를 입는 것을 지칭하는데,
일반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를 가리킨다.

 

방사선이 세포 분열과 상호작용함에 따라 수많은 피폭 증상이 나타나며

특히 이러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빠르게 세포가 분열하는 위장 기관 등에서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의 점막세포가 전부 벗겨지므로 영양을 흡수할 수 없게 되어
치사에가깝거나 혹은 치사에 이를만큼 굉장히 심각한 설사증에 걸리며,
피부가 전부 때처럼 벗겨져 떨어지면서 피부 밑의 생살, 근육이 그대로 노출된다.
(심한 화상상처와 같은 증상)

 

 

또한 혈구를 만드는 골수 세포가 소멸해서, 면역력이 없어진다(에이즈와 같은 증상) 
뇌나 신경세포는 죽는 그 날까지 수명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이나 감각은 그대로.
죽는 그 날까지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 계속된다.

 

 

윗글과 관련하여,방사능에 노출되어 입은 후발적 피해와 관련된 시각자료는

원자폭탄이 터진 1945년이라는 시기적 특성과 대다수 피해자가 화상으로 사망한것이 맞물려

일본내 피해자료의 사진을 거의 찾아볼수없는 관계로

아래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사고의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고자한다.

 

 

 아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자들의 추가 사진자료이다.

 

 

 



 

 

 

폭발직후 열상으로인한 사망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사망자수는 대략 70만명 정도라고

통계적으로 추정되어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유럽에 일어난 사건사고중에서도 무시할수없을만큼 큰 타격과
재앙을 몰고온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관련하여

잘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중 가장 미스터리한 사실은
그만한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때
사고 직후 현장 사망자가 단 3사람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후에 더많은 사상자와 잠재적 사망위험자가 수천명 이상 속출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당시 현장사진

 

 

 

체르노빌 원전 방사능 유출사고는, 메이데이를 앞둔 금요일 심야에 일어났다.

"제어봉을 완전히 넣으면, 노심은 멈춘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넣으면 남은 핵반응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험 중이었다.
덧붙여 안전 장치는 잘려나간 상태였다.

 

 

금요일 심야. 기사나 작업원들은,

"이 일만 끝내면 쉴 수 있다."라는 기력이 왕성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실험은 폭주라는 결과를 낳고, 휴일은 완벽히 망가졌다. 재액, 노심 융해, 멜트 다운.
원자로 바로 아래에는 핵반응을 제어하기 위한 냉각수 풀이 있었다.
멜트다운이 진행되면, 그 풀의 물로 수증기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세 명의 남자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그 물속을 헤엄쳐 냉각수 풀의 마개를 뽑았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수증기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그 위대한 업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끔찍한 사고가"더 끔찍한 사고"가 되는 것을 막았다.
유럽 전역이「죽음의 숲」이 되는 것을 막은 그 셋.
그러나 그 셋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
..

 

 




 

 

1989년 6월 키에프 체르노빌원자력 발전소의 북위 25도에 위치한
병원에서 발전소의 관리원으로 일하던 남자가 오른쪽다리를 치료받고있다.
이남성은 3년이 지난뒤까지 상처가 치유가 되지않아서 계속 치료를 받았다고전해지며
그의발은 다행히도 그가 신었던 신발덕분에 방사선에 많이 누출되지않았다고한다.

 

 

 


1945년 일본(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보다 수십∼수백배나 많은
'죽음의 재'를 뿌린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명확치 않으나, 98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략 사망자가 3500명 정도라고 밝혔다.

 

훗날 피폭 피해자는 수십만∼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다시 추정집계 되었고,
그중 수천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수많은 기형아가 태어났고, 유아 사망률 또한 높아졌으며
주변환경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쳐, 체르노빌 원전에서 32㎞ 내에 있는 토양과

지하수원이 방사선에 심하게 오염됐다.

 

 

 

그리고 방사능에 피폭된 피해자들의 사진

 

 

 



 

체르노빌 원전사고때 피폭자의 대장 내시경사진

인체의 조직중에서도 죽음과 재생속도가 가장빠른

대장의 점막세포가 재생이 되지 않으면서 장출혈이 발생,

또한 장내에서 영양분이 흡수가 되지않아

 사망에까지 이를수있는 심각한 설사및 탈수증세를 동반했다.

 



 



 

 

마찬가지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당시 피폭자의 자료사진.

구강점막이 재생되지않아서 입안이 심하게 건조된상태 

 


 



 

이사진역시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의한 피폭자의 사진이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죽은세포가 재생이 안되어서

손바닥의 기존 피부가 허물처럼 벗겨지고있다.

 

 

 

1986년 방사능 누출사고를 낸 체르노빌의 제4원자로에 이어
제2원자로도 지난 1991년 화재로 가동이 중단됐고 제1원자로는
지난 96년 국제협약에 따라 폐쇄되었다.

 

제3원자로는 2000년 12월15일 가동을 완전중단하였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95년 서방선진 7개국(G7)의 합의에 따라 총 31억달러의 원조를 받고

2000년 12월 체르노빌 원전을 영구 폐쇄하였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폭발 당시 현장에서 3명이 사망하였고,
사고수습 후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서 28명이
방사선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방사선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한 환자들은

대부분 화재 진압과정에 투입되었던 소방수들이었다.

 

 

 



 

수집한 사진중 피폭자가 온몸의 피부가 벗겨진채
사지보호대에 매달려 침대위에 떠있는듯한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의 피해자가 심각한 화상에의해 치료를 받는것인지,
아니면 방사능에 노출되고난뒤 시간이 흘러서
피폭의 피해양상이 두드러졌을때 치료의 과정을 찍은 사진인지는 추정불가.


여러가지 설명들이 각 사이트마다 다르게 다르게설명되어있었으나
피폭으로 재생되지 않는 피부가
짓눌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
침대가 보이는 걸로 미루어 피폭자임은 거의 확실한 사진.
 
침대의 구조는 사지보호대가 높게 형성 되어 있고 바닥의 접촉면이 계속 바뀌도록
보호대가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형식으로 설계되어있다.

 
2ch에서 토카이무라원전사고 관련 글에 위의 사진을 언급한 사람이 있었는데
일본원전(토카이무라 JCO) 피폭자가 아니라는 의견이 다수로서
현지의 사고자료를 구체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접한사람들의 발언인 점으로 미루어
일본내에서 발생한 사고에의한 피해자는 아니라는 설은 타당한듯 여겨진다.


확실한 사실을 밝혀줄 만한 출처가 없는 한 정확히 일본내 피해자인지
해외 피해자인지에대한 여부는 확정할 수가 없으나
사진이 1980년대 중반에 찍힌뒤 유포되었다는 정보로 미루어 가장 유력하다 생각되는건
1986년 체르노빌 원전폭발사고의 피해자라는 설이다.

 

 

 

 

 

 

 

 

2010/ 3/ 1 추가자료


전리복사에의한 피폭단위와 대략적인 증상들.

 

노출 수준과 증세선량당량은 시버트로 나타나 있다.
참고로 0.0035시버트가 자연 방사능 조사량이다.




0.05–0.2 시버트


증세 없음.

LNT 모델에 따라 잠재적으로 암 및 유전자 변형 위험에 있음.
하지만, 이는 논쟁 대상.

 



0.2–0.5 시버트


인지 가능한 증세 없음.
적혈구 일시적 감소.




0.5–1 시버트


두통을 포함한 미약한 방사능병 증세.
면역 세포의 교란을 통한 감염 가능성 증가.
일시적인 남성 불임증도 가능.





1–2 시버트


가벼운 피폭 증세.

30일 이후 10%의 사망률.
미약하거나 어느 정도 수준의
구토를 유발하는 메스꺼움(2 시버트에서 50%의 확률)을 포함한 일반적인 증세가 나타난다.
노출 후 3 내지 6시간 정도에서 시작되며, 하루정도 지속된다.
10 내지 14일 동안 호전 증세가 이어지며,
이후, 식욕부진이나 피로 (2 시버트에서 50%의 확률)와 같은 일반적인 증세가 이어진다.
면역 체계가 저하되어 있으므로, 회복기간이 길며, 감염 위험도 높다.
일시적인 남성 불임은 일반적이다.





2–3 시버트


심각한 피폭 증세.

30일 이후 35%의 사망률.
메스꺼움이 일반적(3 시버트에서 100%)이며, 2.8 시버트에서 50%로 구토한다.
노출 1-6시간 사이에서 증세가 시작되어 1-2일 지속된다.
이후, 7-14일의 호전기가 따르며, 이후 전신에 걸쳐 탈모(3 시버트에서 50%의 확률),
피로 및 일반적인 병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대량의 백혈구 손실이 있으며, 감염의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
영구적인 여성 불임도 가능하다.
회복기간은 수 개월까지도 필요하다.





3–4 시버트


심각한 피폭 증세.

30일 이후 50%의 사망률(치사율 50/30).
다른 증세는 2–3 시버트의 경우와 같으며,
호전기 이후에 입, 피하, 신장등에 심각한 출혈이 발생한다(4 시버트에서 50%의 확률).






4–6 시버트


중대한 피폭 증세.

30일 이후에 60%의 사망률.
사망률은 집중적인 치료가 없을 경우 4.5 시버트의 45%에서 6 시버트의 90%까지도 증가한다.
노출 후 한 두시간 사이에 증세가 시작되어 2일 정도 지속된다.
7-14일간의 호전기 이후, 3-4 시버트에서와 같은 증세가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여성 불임이 일반적이다.


회복기간은 수 개월에서 일년까지도 필요하다.
노출 후 2 내지 12주 가량에 사망이 주로 발생하며,
이는 내부 출혈 및 감염이 주 된 원인이다.


레오니드 텔야트니코프는 35살때인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러시아의 소방국에서 출동하여
불에 타고 있는 체르노빌 재해가 된 반응기 번호 4에 소방수의 팀을 지도했다.
방사선학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방사선 보호의 한 벌,
인공호흡기 및 작동되는 방사능계기가 없었다.


한마디로 방사능 낙진이 떨어지는 곳에 맨몸으로 들어가서 화재를 진압한 것이 되었다.
비록 레오니드 텔야트니코프는 체르노빌 사고에서 살아남았지만
혈액 검사의 결과에서 4시버트의 방사능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이로 인해 발병한 암으로 장기간 투병생활을 해 오다가 2004년 12월 2일 사망했다.
아르메니아 출신 물리학자 해리 K. 더그힐란 2세는
24살 때인 1945년 8월 21일, 뉴멕시코에 있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 일할 당시
임계 질량 실험 도중에 중성자 방사선에 의해 5.1시버트를 받았으며
그는 그로부터 28일 뒤 죽었다.






6–10 시버트


중대한 피폭 증세.


14일 이후에 100%의 사망률.
집중적인 치료가 뒷받침되어야 살아날 수 있다.

골수는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서, 골수이식이 요구된다.
위 및 내장 조직은 심각하게 피해를 입었다.

15 내지 30분 사이에 증세가 시작되어 2일 정도 지속된다.

5-10일간의 호전기 이후, 감염이나 내부 출혈로 사망한다.
회복기간은 수 년 이상이 걸리거나,
혹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10–50 시버트


중대한 피폭 증세.

7일 이후에 100%의 사망률.
이러한 높은 노출은 5 내지 30분 이후에 즉각적인 증세를 불러 일으킨다.

방사능이 뇌 속의 화학 수용기에 직접 작용해서
즉각적으로 극도의 피로와 메스꺼움을 느낀 후에,
며칠 간은 "걸어다니는 유령" 단계로 불릴 정도로 아주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이후, 위 및 내장 조직에서 세포가 괴사하며, 대량의 설사,
내부 출혈, 탈수 증세가 나타나며, 수분-전해질 불균형을 일으킨다.


정신착란 및 순환 기관의 파괴에 따른 혼수와 함께 사망에 이른다.


사망은 피할 수 없으며, 유일한 치료는 통증 치료이다.


캐나다 출신의 루이스 슬로틴은 1946년 5월21일에 로스 알라모스에서 발생한
강조 사고로 인하여 대략 21시버트에 노출되었으며 9일 후인 5월 30일 죽었다.






50–80 시버트


수 초, 수 분 이내에 즉각적인 방향 감각 상실과 혼수에 이른다.
신경계의 완전한 파괴에 따라 수 시간 이내에 사망한다.

 



80 시버트 이상


대체로 즉각적인 사망을 예상한다.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

1964년 7월 24일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우드 리버의 사고에서 100 시버트에 노출된 인부는
49 시간을 살아 남았으며,
1958년 12월 30일 미국 뉴멕시코 주 로스 알라모스의 사고에서
상체에 120 시버트를 받은 인부는 36 시간을 살았다.

 

 

 

 

 

 

 

 

토카이무라JCO임계 사고

 

 

 

 

 

발생과정 및 원인규명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경  일본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 이시가미도주쿠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핵연료 가공회사인
일본 핵연료컨버전(JCO)사의 전환시험동 핵연료 가공시설내에 우라늄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초산용액으로 용해하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규정량보다 7배에 가까운 이산화우라늄용액(UO-2) 16kg을 침전조에 주입하는 도중
임계사고가 발생함에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전환시험동 시설의 서남방 경계선 지역의
공기중 방사선량률은 0.84 mSv/h로 측정되어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대책본부의 조사 결과, 이번 사고는 우라늄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우라늄을 초산용액에 용해시키는 과정에서 통상 핵분열을 막으려고 우라늄
주입량을 2.4kg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 날은 약 7배에 달하는 16kg을 주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후송중인 피폭 피해자

 

 


임계사고 발생과 경과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경,
이바라키현 나카군 토우카이무라의 주식회사 JCO의 토우카이사무소,
전환시험동에서 세사람의 작업원이 질산우라늄을 제조중,
돌연 푸른 섬광과 함께 감마선 검출 모니터가 위험을 알리고, 임계사고가 발생.


세사람의 작업원이 대량의 중성자선등을 피폭하게 되었다.
이 사고로 핵분열이 일어난 우라늄 연료는 전부 1mg 이었다.

 

 

토우카이무라의 주식회사 JCO는 1980년,

스미토모금속광산핵연료사업부 토우카이공장이 독립하여,
스미토모 금속광산의 백퍼센트 출자의 자회사로 설립되었으며,
당시까지 일본핵연료 컨버션으로 불리고 있었다.


본업은 경수로용 원자력발전을 사용하는 연료를 만드는 일로,
이 경우 사용되는 우라늄의 농축도는 3~4퍼센트이다.


전환시험동에서의 작업내용,전환시험동은, 제이시오의 본래의 업무와는 다른 것으로,
핵연료 사이클개발기구(구동력로, 핵연료개발사업단, 이하 핵연기구)로부터 위탁된 것이다.
고속증식실험로 '죠요'의 연료를 가공하는 시험적인 시설이었다.


이때는, 18.8퍼센트라는 높은 농축도의 우라늄 질산용액을 '양동이'를 이용해서
침전조에 이동시키고 있었다.

 

 

 

 

 

 

임계사고란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과 같은 핵분열성 물질의 내부에서 핵분열연쇄 반응이 예상을 벗어난
상황하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을 가리킨다.
임계사고에 의해 방출된 중성자선은 발생장소의 부근에 있는 인간에게 매우 위험하고,
또 이 중성자선에 의해 발생장소 주위의 물체가 방사능을 띠는 원인이기도 하다.


핵분열 반응의 발생을 전제로서 발생하는 임계사고가 발생하면,
발생장소로부터 수십미터 이내에 있는 작업원은
중상 또는 사망에 이르는 높은 위험성에 노출되어있고,
또 발생장소 부근에는 방사성 물질이 방출될 위험이 발생한다.
 

토카이무라 JCO 사고에서는, 원자로시설이 아닌 핵연료공장의 한편에 갑자기 나타나서,
'방벽이 없는 원자로' 가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임계의 계속

 

 

이 사고에서는 임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눈치채지 못하고,
그것에 맞는 수단을 취하지 않은채 약 20시간을 계속 작업하고 있었다.
그때문에 대량의 중성자선과 감마선, 핵분열로 생겨난 방사능의 방출이 계속되었다.
토우카이무라의 곳곳에 설치된 방사선의 모니터는 통상의 20~30배 정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결사의종식작업

 

10월1일, 오전 1시 40분 제일회 현지대책본부회의가 열려서,
침전조 근처의 냉각수의 처리가 시험되었다.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쐬일 각오를 하고 사진촬영반 두명과 열여섯명이 결사의 작업을 한 결과,
핵반응은, 오전 6시 15분경 종식외었다.
그후, 중성자 흡수재(붕산)이 주입되어 임계의 위험성은 없어졌다.

 

 



 

사고뒤 폐기물을 처리하는 모습

 

 

 

 

 

현장의 움직임과 대응

 

 

원자력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고 적절한 피난 및 방호다.
실제로 그게 되었는지 기록을 보도록 하자.

 

JCO 임계사고의 시간표, 원자력 자료정보실편 '공포의 임계사고' 에서 발췌

 

9월 30일

10시 35분경 임계사고 발생


10시 43분경 제이시오로부터 토우카이무라 소방본부에 출동요청


10시 46분 시설에 구급차 도착, 작업원 세명 수용

 

15시 25분 피폭한 작업원 세명이 헬리콥터로 방사선의학통합연구소에 도착,
'푸른 빛을 보았다' (체렌코프 방사선) 라고 증언

 

16시경 핵연료 사이클개발기구가 중성자선량율 측정개시

 

10시 36분경 현장에서 부터 서쪽으로 일점칠키로 떨어진 원자력연구소
나카연구소에서 6.3μSv/h (마이크로시버트퍼아워)의 중성자선량율을 검출

 

11시 34분 토우카이무라 관청에 제이시오로부터 임계사고의 가능성이 있다고 연락

 

11시 35분 연원자력안전대책과에 연락


12시 30분 토우카이무라, 방재무선방송으로
'가공공장에서 사고, 방사성물질의 유출, 통상의 열배정도이다.
집에서 나오지 말라' 고 방송. 200m이내 출입금지

 

15시경 토우카이무라 350m권내 주민피난요청, 주변도로 교통규제등을 하고,
3km 이내는 접근금지

 

16시 40분 나카마치혼베이자키지구에 피난요청


22시 30분 반경 10km권내 주민(십만세대 약 31만명)의 옥내피난요청

 

이튿날


11시 19분 과기청에 제이시오로부터 사고제일보 '사고발생 임계가능성'
12시 41분 오부치수상에 제일보
14시 30분 사고에 대해 과기청으로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 과기청, 재해대책본부설치

15시경 정부, 사고대책본부를 설치, 과기청현지대책본부설치


23시 15분 제이회사고대책본부회의에서,
침전조의 주위에 냉각장치로부터 흘러나온 냉각수처리에 대한 대책을 토론

 

10월 1일 2시 35분 현장의 사진촬영, 임계상황억제를 위한 침전조의 냉각수 처리등의 작업개시
여섯시십사분 냉각수처리 작업종료

 

16시 40분 현 10km옥내피난 해제
오전 1시경 문부성 십키로이내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휴교를 지시


15시 10km권내 옥내피난해제는 문제없다고 정부견해를 발표. 과기성 사고를 레벨4로 평가

 

10월2일

18시 30분 토우카이무라 삼백오십미터이내 피난요청 해제,
동일한 시각 정부농축수산물에 대한 영향은 없다고 발표

10월 4일 토양 및 식물에서 요오드 131이 검출됨 (쿄토대학 원자로실험소 코이데 교수)
10월 11일 배기계를 정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됨.

이날 이후의 경계이후로도 누출이 계속되다

 


피폭의 실태

 

 

JCO 사고에서는, 겨우 1미리그램의 우라늄이 핵분열한것이 큰 피해를 일으켰다.
(참고로, 백만키로와트급의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하루 2~3키로그람의 우라늄이 핵분열하고 있다)
임계에 의한 방사선의 방출에서, 동해사업소내 사람들은 물론,
부근의 많은 주문들까지 피폭당하고 말았다.


방사선의 종류는, 중성자선 및 감마선, 그리고 기체의 방사선물질 등이다만,
이번의 피폭의 주된 원인은 중성자선이었다.


중성자선은 투과력이 굉장히 강하고, 두꺼운 콘크리트조차도 투과하며,
중성자선을 멈출수 있는 것은 수소를 많이 포함하는 물질이다.


사람의 몸은 많은 부분이 물로 되어있어서, 중성자선은 인체에 잘 흡수되어,
세포를 상처입힌다거나, 죽게 만든다.

(보충설명 : 중성자선은 인체에있는 나트륨을 나트륨 24 라는 방사선 물질로 바꾼다.)

 


 

이하, 피폭의 상황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치료중인 피폭 피해자

 


하나. 노동자등의 피폭

 

 

직접작업을 하고 있던 세사람중 한사람 오우치씨, 추정 16~20시버트이상의 피폭,
1999년 12월 21일 사망.
시노하라 리히토씨, 추정 6~10 ㏜(시버트)의 피폭, 2000년 4월 27일에 사망.

요코가와 유타카씨, 추정 1~4.5㏜(시버트)의 피폭, 일시적으로 백혈구수치가 제로가 되어,
위험하였다만, 그후 퇴원하였다.( ㏜(시버트)는 피폭선량 단위,
치사량은 6~7 ㏜(시버트) 정도라고 한다)

 

오우치씨, 시노하라씨의 사인은 방사선피폭에 의한 대장기의 기능부전에 의해서이다.
이상의 세사람은 1999년 10월 6일 급성방사선증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오우치씨의 사망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일본방송협회 취재반
'피폭치료83일간의 기록'을 참조)

출동한 구급대원중 세사람은 사고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출동하여, 30미리Sv의 피폭을 당한다.


임계종식을 위해 작업을 한 사람들 및 동해사업소의 종업원 정부관계기관의 직원등이
최대 120 미리시버트에 달하는 피폭을 입었다.
그외에 50미리 Sv를 넘는 사람이 여섯명이나 된다.
(방사선을 다루는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연간 50미리 Sv를 한도로 하고 있다.
이 숫자는 가슴에 달고 있는 방사선량계측계에 의한 것이다)

 

 

 




피폭된 피해자들의 모습이 찍힌 치료사진

피폭피해 노동자 3명중 오우치 히사시(大內久.35)씨의

피폭치료기록 中

 


 

 

 


둘. 주민의 피폭

 

JCO의 시설은 평범한 마을 한복판에 있다.


임계사고때는 인접시설에서 작업하고 있던 일곱명 및 주변의 주민이 장시간
중성자선등을 피폭당하였다.


처음 사고조사위원회(사고보고서참조)는, 주민의 피폭을 일곱명이라고 보고하고 있지만,
그후 200명이 추가되었다.


가장 많이 피폭당한 사람은 25미리 시버트, 보통 사람이 연간 피폭한계가 1 미리시버트인데,
이를 초과한 사람이 112명에 달하고 있다.


(이 숫자는 과학기술청의 사고조사대책본부가 행동조사에 의해 피폭선량의 추정을 한 결과이다.
과학기술청의 선량평가에 대해서는, 후기의 오이즈미씨의 경우,
한난중앙병원의 조사의 육분의 일 이하라는 예도 있어, 생략하고 있다)


더욱이, 피폭인원 총 수는 바깥에서 인정된 숫자만 2000년 4월까지 667명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자료를 구할수 있었던 피해자 시노하라 리히토씨의

치료기록을 끝으로 이글을 마치겠다.

 

 

 

피폭 노동자 시노하라 리히토의 치료기록

 

 



 

토카이무라 임계사고 방사능에 쐬인 JCO노동자 시노하라씨(40세)의 치료경과 사진
(제3회 일본임석구급의료학회에서의 공표)

 

 


1999년 9월30일 : 임계사고로 얼굴과 양팔에 10 Sv (시버트,Sievert)의 중성자를 맞고 피폭

 

 10월10일 : 외상은 없지만, 붉은 반점, 구토, 설사, 의식장애등이 나타남.

 

 11월10일 : 피부가 점점 벗겨져, 70%가 벗겨져떨어짐.

 

 12월20일 : 양앞팔부(분)에 피부이식을 행함.


2000년 1월 4일 : 안면에도 피부이식을 행했지만,
DNA의 손상으로 피부의 재생능력은 잃어버리고 있음.

 

2000년 4월27일 : 사망

 

 

 

 

 

 

 

출처. 이미지 구글

        전파만세 글중일부를 발췌 편집,각색

            (히로시마 그리고 나가사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사고)

        에밀님의 이글루스 블로그 (링크)의 글을 각색 편집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글의 일부를 발췌

            (토카이무라 JCO임계사고)

         그리고 내용의 일부및 이미지를 제공해준 

         여러 해외 블로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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