俺/作

깨끗한 증발 - 황학주

I T69 U 2011. 6. 17. 16:10

 



황학주(1954~ )는 광주 사람이다. 시인은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명문 광주상고를 나왔다. 그는 나중에 국문학 박사가 되었지만, 삶의 태반은 상고 출신으로 살았다. 그 삶은 학력사회인 이 땅에서 소소하게 마음이 많이 다친 삶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가 있다. 그의 시는 ‘상처 학교’라고 부를 만큼 다친 흔적이 지천이다. 그는 때때로 인륜의 어떤 의무들에 태만한데, 그것은 도덕적인 빈곤이기보다는 기진(氣盡)한 자의 불가피함으로써 그러하다. 그가 굴곡 많은 삶과 상처를 품은 시들을 세상이라는 진흙 뻘에서 배[復]를 밀며 씩씩하게 나가게 하는 동력은 연민이다. 시인은 불화와 헤어짐을 품으며 가여운 것들을 연민으로 품는데, 연민은 갸륵하게도 상처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 그는 1987년에 시집 《사람》으로 시인이 되었다. 그가 시인이 될 때 나와는 인연이 있다. 그가 시집 원고를 들고 내가 경영하는 출판사를 찾아왔고, 나는 그 원고를 받아 읽고 흔쾌하게 시집을 만들었다. 그 뒤로 나는 출판사를 접었다. 30대를 갓 넘겨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만난 그도 이제는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여러 권의 시집을 가진 중견 시인이 되었다. 그는 고흥에 산다고 했다. 때로는 아프리카 케냐에 가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모든 것들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항상 그가 어디에 사는지 그 정확한 주소를 모른다. 그가 유목민으로 여기저기 떠돌며 살기 때문이다.
 
  황학주의 시들은 늘 어떤 상흔(傷痕)을 노래한다. 시인이 걸어야 했던 일신운화(一身運化)의 길은 거칠고 팍팍한 길이다. 스물세 해 전 쯤 펴낸 첫 시집 《사람》에서 “지금 성한 것은 영원히 성한 것이 아니라고 / 내 믿음을 섣불리 말하면 너는 눈물 안 날 것이냐?”(〈섬진강 내일〉), “5월과 6월이 어떻게 지나갔는가 / 우리 살도 째고 내장도 뜯으며 간 봄”(〈계화교에서〉), “가슴은 새로 쓸 수 있다 하니 다친 가슴 / 단단히 잘 굳으면 나가서 빗줄기를 맞을 때”(〈바람에 불려 차디, 차던〉) 따위의 구절들에, 살림을 들어먹고 고리 사채(私債)에 시달리다 등 맞대고 살던 사람이 뿔뿔이 흩어지며 찢기고 뜯긴 마음의 흔적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그가 시에서 계화도 수몰 이주민의 팍팍한 삶에 제 삶을 겹쳐낼 때 슬픔은 삶의 저 안쪽까지 깊게 삼투하며 어떤 무늬들을 선명하게 새긴다. 황학주의 시들은 그 무늬들을 안고 찬란해지는 것이다.

발췌인용 : "조선일보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황학주편"




깨끗한 증발

황학주作



꼬불꼬불한 불빛을 그리며 막차가 헤엄치고 있다
가로수길 형체가 없는 바람 속에서
참으로 긴 슬픔이 부딪는 잎새소리를 들었다
아직은 내 막막한 욕망에 연결된 삶 때문에
자옥한 외로움의 편력이 바닥을 깔았다
나의 목을 내동댕이 치며.

어떤 날은 오늘이 아닌지
어떤 별은 내일인 듯
그만 스러져 간다
어느 날
자갈에 박히는 물방울처럼
가로수 뿌리보다 강한 사련의 뿌리까지
날아가는 깨끗한 증발,
내 괴롬의 부스럼들이 지워지고 나면
한 삶의 빛도 바래리
어두운 눈꺼풀을 차곡차곡 벗어두고
빛도 문자도 없는 깨끗한 내가 되리.

돌아오지 않는 사랑 속을
자맥질하는 슬픔.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로부터  (0) 2011.06.21
소리 없는 노래 - Joseph Brodsky  (0) 2011.06.17
겨울 물고기 - Joseph Brodsky  (0) 2011.06.17
태초에 여자가 있었으니 - 에바 토트  (0) 2009.08.17
日曜日のお別れ - Lamp  (0) 2009.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