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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은 가계부채 통계서 전월세 보증금 합산땐 최대 1400조

I T69 U 2011. 5. 10. 01:05


 

리스크 측면에선 ‘전월세 보증금’도 부채
한은 가계부채 통계서 빠져…합산땐 최대 1400조
논란 불구 전셋값 비중 감안하면 보수적 관점 필요

 

  기사등록 : 2011-05-08 오후 08:42:13 기사수정 : 2011-05-08 오후 10:56:02

 

 

[한국경제 ‘뇌관’ 가계부채 진단&전망]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많다. 정작 정확한 가계부채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800조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고 937조원이라는 통계도 나온 상태다.

 

800조원이라는 숫자는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가계신용’ 통계에 따른 것이다. 한은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들이 지고 있는 빚 규모를 뜻하는 가계신용이 795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가계신용이란 가계대출(일반가정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과 판매신용(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진 빚)을 더한 것이다. 이에 반해 한은이 ‘공식적으로’ 가계부채로 추계하는 규모는 937조원이다. 이 수치는 한은이 작성해 발표하는 ‘자금순환표’상에서 개인부문이 이자를 무는 금융부채 규모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한은이 가계부채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통계로 내놓은 수치가 795조원(가계신용)과 937조원(자금순환표상의 개인부문 이자부 부채)으로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차(142조원)가 발생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두 통계에서 ‘가계’와 ‘개인’의 포괄범위가 서로 다르다. 가계신용은 가계만을 대상으로 조사하지만, 자금순환표의 개인부채에는 가계 이외에도 자영업자 등 소규모 개인기업과 민간 비영리단체가 포함돼 있다. 둘째, 금융기관의 포괄범위도 다르다. 가계신용에는 대부사업자·연금기금·증권회사·종금사 등 일부 금융기관에서 꿔온 빚이 빠져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 최대한 실제 가계부채 규모에 근접한 수치를 얻기 위해선 보완작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모든 금융기관을 포괄하는 개인부채를 기준으로 삼되 사회봉사단체와 종교단체 등 비영리단체의 빚은 여기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민간소비에서 비영리단체의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2.8%를 적용해본다면, 순수하게 가계만의 부채 규모는 어림잡아 91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아 있다. 우선, 이자를 물지 않는 외상은 부채가 아닌 것인가? 일반적인 통념은 부채로 친다. 예를 들어 자영업자가 거래처에 달아 놓은 외상 등은 이자를 지불하지는 않더라도 엄연히 나중에 갚아야 할 빚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이자부 부채’도 가계부채에 포함시키는 게 맞다. 민간 비영리단체를 뺀 가계와 자영업자의 비이자 금융부채(상거래신용+기타금융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58조원 정도이므로, 가계(자영업자 포함)의 이자 및 비이자 금융부채는 모두 969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진짜 중요한 핵심은 전월세 임대보증금을 가계부채 산정에서 제외하는 게 적정한가의 문제다. 원론적으로는 빼는 게 옳다. 임대보증금은 가계의 대차대조표상에서 동일금액의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늘리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주인인 임대인에게 임대보증금이란 사실상 계약기간 뒤에 돌려주어야 할 ‘부채’인 반면, 임차인에겐 나중에 주인에게서 돌려받을 ‘자산’이다.

 

하지만 경제시스템의 ‘리스크’ 측면을 생각한다면, 임대보증금도 가계부채에 포함시키는 게 더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집값이 떨어지면서 임대보증금의 상환과 회수가 문제가 되는 ‘역전세난’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금융기관의 대출금만을 갖고 추정한 현재의 가계부채 규모는 통계적 엄밀성은 지닐지언정,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임대보증금을 포함한 가계부채는 어느 정도일까? 전월세 임대보증금에 대한 실측치가 존재하지 않는 한 추정 방법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최근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조사·발표한 ‘2010가계금융조사’ 자료를 이용하면 대략적이나마 추정이 가능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임대인 입장의 부채에서 임대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2.4%다. 이를 지난해 말 현재 자금순환표상 민간 비영리단체를 제외한 개인부문 금융부채(비이자부 금융부채 포함) 규모(969조원)에 적용할 경우, 임대보증금은 대략 464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 통계에서 이자부 부채 통계항목에 이미 잡힌 금융권의 전월세 자금 대출 잔액(12조8000억원)을 뺀 게 사실상 가계부채의 실상이다. 이런 방식대로라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임대보증금까지를 포함한 가계부채 규모는 이자부 가계부채(911조원)+비이자부 가계부채(58조원)+전월세 임대보증금(464조원)-전월세 자금 대출 잔액(12조8000억원)=1420조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단, 여기서 전월세 자금 대출 잔액은 과소 평가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는 전월세 보증금용 대출인데도 다른 명목의 대출로 잡힌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한다면, 피부로 느끼는 가계부채 규모는 ‘최대 1400조원’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물론 임대보증금을 가계부채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는 임대인 입장에서는 결국 상환부담을 지니는 리스크 요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셋값이 집값의 절반을 넘은데다 지속적인 집값 상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다소 ‘보수적인’ 관점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송태정/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